<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바깥은 여름’을 읽고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 ‘바깥은 여름’을 읽고
“아빠가 많이 위급하시다.”
학교로 걸려온 엄마의 전화를 받고 병원으로 향하던 때의 기분은 너무 현실성이 없어서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병원 앞 음식점에서 김치찌개를 가운데 두고 아빠가 돌아가실 것 같다고 말하던 엄마의 목소리는 너무 담담해서 으레 식사 때 하던 잡담을 하는 기분까지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은 밥을 어떻게 먹지? 옷은 어떻게 입지? 나의 상실과는 별개로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었다. 나는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도 좋아하는 반찬과 함께 밥을 먹었고 계절에 맞춰 옷을 입었다. 그러나 나의 시간은 한동안 아빠가 돌아가시던 날에 멈춰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서성거렸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예쁜 옷을 사 입고, 나의 일상을 보내는 것이 죄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무언가 내가 사랑하는, 사랑했던 것을 잃는다는 것은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는지, 모든 것을 멈추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세상은 무심하게도 흘러갔고 계속 슬퍼하기에는 내 슬픔의 크기가 충분하지 않았는지 ‘누구나 다 겪는 일이야.’ ‘시간 지나면 다 괜찮아져’ 따위의 말로 나는 밖으로 튕겨 나와졌다.
“풍경이, 계절이, 세상이 우리만 빼고 자전하는 듯
시간은 끊임없이 앞을 향해 뻗어나가는데
어느 한 순간에 붙들린 채 제자리에 멈춰 설 수밖에 없을 때,
그때 우리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저자는 제목의 ‘바깥’에 대해 "말 그대로 나의 외부. 나와 타인, 나와 세상의 간극을 나타내는 말로 썼다.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세상 또는 타인으로부터 느끼는 온도 차, 시차 때문에 가슴에 결로(結露)와 얼룩이 생기는 이야기들을 묶었다."고 얘기한다. 각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다양한 형태의 상실과 고통, 혼란을 경험한다. 사랑하는 아이를 잃기도 하고 오래된 연인과 헤어지기도 하며, 가장 친한 친구였던 강아지와 이별하기도 한다. 이러한 상실과 맞닿아있는 삶은 견디기 힘들만큼 시리고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어 시간과 풍경, 계절마저 붙잡아둔다. 하지만 바깥은 여름이기에, 여름을 살고 있는 사람은 이제 그만하고 바깥으로 좀 나오라고, 그만하면 됐지 않냐고 얘기한다.
“아내가 동네 사람들로부터 ‘꽃매’를 맞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이들이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줄기 긴 꽃으로 아내를 채찍질하는 것처럼 보였다.”
p. 36 바깥은 여름 – [입동 中]
타인의 비극이란 닿지도 않고 너무나 불투명한 것이라 쉽게 가벼워지곤 한다. 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났던 세월호 참사 이후로 4년이란 시간이 흘렀지만 많은 이들의 시간은 아직도 4년 전에 머물러 있다. 바깥에 있는 이들은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너는 이제 그만 울라’며 그들을 다그치고 타인의 비극을 가볍게 다루며 조롱한다. 누군가에겐 이미 끝난, 그저 사고로 치부되는 사건이지만 누군가에겐 현재진행형이다. 타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자비를 베풀게 하는 연민은 아름답지만 정제되지 않은 연민은 상대방을 할퀴기도 하며 무례하기 짝이 없다. ‘불쌍하다.’ ‘너만 그런 것 아니야.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야.’ 이런 식의 위로와 연민은 심지어 조금 얄밉게 느껴지기도 한다.
저자는 소설 속에서 여러 종류의 상실에 대해 얘기하지만 그들에게 위로는 건네지 않는다. 다만 보여줌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감정을 느끼고 바라볼 수 있게 만든다.
인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표정을 알 수 없는 시리의 캄캄한 얼굴 위로
지성인지 영혼인지 모를 파동이 희미하게 지나갔다.
시리는 무척 곤란한 질문을 받았다는 듯
인간에 대한 ‘포기’인지 ‘단념’인지 모를 반응을 보였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p. 238 바깥은 여름 -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中]
‘인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질문은 인류의 역사 내내 골머리를 앓게 만들었지만 지금도 그 답은 찾지 못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인간’에 대해 고민하는 이유는 ‘인간’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비극에 마음 아파하고, 부당한 일에 정의감을 불태우고 폭력과 압제에 저항하는 ‘인간다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인간이라면, 인간답기를 원한다면 적어도 인간에 대해 시리 보다는 더 나은 답을 해야 하지 않을까
“ 안에선 하얀 눈이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일
누군가의 시차를 상상했다.”
p. 182 바깥은 여름 – [풍경의 쓸모 中]
무언가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가슴에 생기는 결로와 얼룩, 그리고 그들이 세상 또는 타인으로부터 느끼는 온도 차와 시차. 어느 한 순간에 붙들려 제자리에 멈춰 선 그들에게 우리는 어디로 가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하얀 눈이 흩날리는 누군가의 삶을 상상해 보는 것. ‘내가 이만큼 울어줬으니 이제 너는 그만 울라’고 매질하는 것의 폭력성을 인지하는 것. 말보단 행동이 힘을 갖듯 누군가의 비극을 희극으로 소비하지 않고 계속해서 기억하며 그것을 바깥으로 끄집어 내는 것. 이렇게 하나의 ‘삶’이 다른 ‘삶’을 바라봄으로써 ‘안’과 ‘밖’의 시차를 줄여 나가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가 되지 않을까?
가천대학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구승희